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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폭탄급 위력을가진 9/11 음모론 미스테리

2010/02/08 19:08


미국에서 금세기 최대의 사건으로 꼽히는 9/11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에 여객기가 충돌해 건물 2동이 완파되고 국방부 건물에도 여객기가 충돌하는 등 동시 다발적인 테러사건이 발생하였다.테러로 인한 사망 실종자는 4763명이며 미국은 테러 용의자로 빈라덴과 알카에다를 지목하고 부시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게 된다.

이 사건은 이라크 전쟁의 구실이 됐고 모든 미국인들에게 알카에다와 오사마 빈라덴을 공공의 적 1호로 인식되게 만든 사건이다.

전세계적으로도 이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테러단체를 규탄하는 움직임이 일었고 미국의 각종 군사조치들에 대해 동조하는 분위기가 되었다.그런데 조사가 진행되면서 과학자들,그리고 연구가들은 이것이 오사마 빈 라덴이 아닌 미국의 자작극이라는 결론을 내게되고 이 사건은 전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금세기 최고의 음모론 1위로 떠오르게 된다. 작년에는 오바마 대통령의 '녹색일자리' 담당 자문인 반 존스 보좌관이 9/11테러 의회 조사를 촉구하는 2004년 탄원서에 서명했다는 언론 보도가 잇따르자 사임하기도 했다.

왜 십년이 지난 아직까지 의문의 미스테리가 풀리고 있지 않은채 '뜨거운 감자'로 언제든 수면으로 올라와 터질수 있는 음모론 1위 부문을 차지하고 있는것인지 한번 당시의 상황들을 개제해본다.


9.11 사태의 진정한 본질을 보여주는 보다 중요한 증거가 하나 있다.

즉 9.11 테러와 미 정부의 대응에 대한 일체의 진상조사를 부시 대통령과 미 의회가 거부하고 있다는 점이다.미국 본토에서 사상 초유의 대량학살 행위가 벌어진 5개월이 돼가는데도 의회는 청문회도 열지 않았고 조사위원회도 구성되지 않았다.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오히려 철저하게 무시됐다. FBI 내부의 자체조사마저도 은폐되고 있다. 진상조사를 외면하는 행위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며 이에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도 없는 점을 볼 때, 정치적으로 은폐됐다는 의혹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 당시의 국내 뉴스기사중.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20204171635&Section


그런데, 지금 이 9/11 음모론이 점점 표면으로 드러나 실제라는 증거들이 속속 대중들에게도 공개되고 있다.공신력을 인정받는 네쇼널 지오그래픽의 다큐등이 만들어 지고 이 사건은 점점 표면으로 올라오고 있는중이다.이것은 지금의 오바마 정부와 부시의 관계와도 밀접한 관계에 있으며 부시가 근래 비밀리에 오바마와 회동을 가지고 있는 것과도 연관되어 있음을 짐작할수 있다.

우리나라도 예전 광주에서 정권이 국민들에게 비슷한 일을 벌이지 않았는가..그후에 정권이 바뀌면서 어떻게 됐는지는 국민들이 더 잘알것이다.아마도 이와 비슷한 관계가 부시와 오바마 정권 간에 남아있다는것을 짐작할수 있다.군수업체의 기득권측이 오바마 실각을 추진하고 있는 원인중 하나이기도 할것이다.

9/11 사건은 언제든지 수면위로 떠오르게 되면 미국 시민들의 폭동을 유발하게 만들수 있을정도의 가공할 위력을 지닌 사건이다.자신들의 정부가 스스로 시민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만행을 저질렀다는 음모설이 사실로 드러나게 될때 겪게되는 분노를 생각해보라. 아직도 국내의 대부분 사람들은 미국이 흉악한 범죄조직 알카에다의 테러에 맞서 지구를 지키는 경찰역활을 하고있다고 믿는 착한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다.그런 사람들에게는 9/11자작설은 단순한 정신나간 사람들의 헛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이미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과 지식층들은 그것을 기정 사실화로 알고있는중이다.


내쇼널 지오그래픽의 다큐멘터리 9.11 음모론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고 공신력 있다는 다큐멘터리 채널 내쇼널 지오그래픽에서 모든 9/11 사건의 의혹들을 전 세계에 방송하였다. 당시에 미 정부는 조사하는것 자체를 막았고 전쟁준비로 국민들을 다그치며 국회등에서 거론 하는것조차 막는 분위기 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도 풀리지 않는 의문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이제 9/11 사건들은 떠도는 음모론이 아닌 수면위로 언제든 올라올수있는 시한 폭탄인 셈이다.점점 메이져 언론과 매체들이 당시 음모론자로 몰렸던 사람들의 리포트와 조사발표등을 조금씩 공개적으로 전세계 국민들에게 알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 정부가 제시하는 증거들에서 계속되는 의문들이 터져나오자 급기야 미정부는 모든 조사를 강제로 끝내고 거론하는것조차 서둘러 종결한채로 진상을 요구하는 모든 증거들을 음모론 으로 몰아 부쳤다.그러나 덴마크의 과학자는 9/11 사건에서 쌍둥이 빌딩이 무너진것이 비행기 충돌로 인한것이 아니라 건물 내부의 나노테크놀러지 폭탄이 사용되었다는것을 조사결과 밝혀냈다.

지금도 심심찮게 터져나오는 9/11의 증거들과 언론의 보도들을 보면서 언제든 메이져로 떠오르게 될 가능성을 지닌 당시의 의문 미스테리 파일들을 다시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9/11 사건의 의문들과 진실들..

당시 9/11 사건에 대해 제기됐던 의문의 장문의 조사 리포트 파일이다.간략하게 핵심만을 추려내 보았다.

1. 부시 가문과 빈 라덴 가문의 돈독한 관계


테러혐의 자금을 색출하기 위해, 오사마의 본가이며 사우디아라비아의 부호인 '사우디 빈라딘' 그룹의 거래처를
추적한 FBI 수사관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대표적인 인물로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 조지 부시를 비롯, 1990년대 이후 역대 미국 행정부의 최고위급 인사들이 관련자로 줄줄이 등장했다.

9월 29일자 『월스트리트 저널』 오스트레일리아 주말판의 기사에서 '월스트리트 저널' 기자들이 만난 부시 전 대통령의 대변인 진 베커 여사는 “부시가 1998년 11월 오사마의 가족들과 한 번 만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부시 전 대통령과 라덴 일가가 여러 차례 만났으리라는 심증을 가지고 있던 기자들이 그가 쓴 감사장을 제시하자 그녀는 말을 바꿨다.

“부시는 라덴 일가와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두 번밖에 안 만났어요.”

2000년 1월, 미국 대통령의 부친과 세계에서 가장 악명 높은 테러리스트의 가족이 두 번째 만남을 가졌다는
것이다.부시는 세계 최대의 상업은행으로 방위산업과 항공산업에 집중 투자하고 있는 칼라일 그룹의 아시아·중동 담당 상담고문직을 맡고 있다. 라덴 일가는 칼라일 그룹을 통해 미국의 국방산업에 엄청난 자금을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시 대통령이 오사마의 테러활동을 막기 위해 혹은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국방비를 늘리면 부시 일가와 라덴 일가는 사이좋게 엄청난 수익을 누리게 되는 동업자 관계였던 것이다.빈라덴 가문은 사우디에서 성전 건축으로 돈을 번 회사로 1500억 달러에 이르는 사우디 미군기지 건설을 도맡아 한 바 있다.
 
빈 라덴은 1979년 소련의 아프카니스탄 침공때부터 CIA의 도움을 받아 아프칸 반군을 지휘했다.30년 동안 빈 라덴은 CIA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마약거래, 반군활동, 테러 등의 활동을 했고 많은 돈을 벌었다.빈 라덴 가문도 부시 가문과 돈독한 관계를 맺으며 무기사업에 투자했다. 그런 빈 라덴이 하루 아침에 자신과 아무 관련 없는 팔레스타인 사람이 핍박 받는다는 이유로 미국을 상대로 테러 행위를 할 확률은 극히 적다는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빈 라덴이 연관없다는 또하나의 정황은 911 테러로 빈 라덴과 이슬람이 얻는 이익은 아무것도 없다는것을 들수있다.회교 원리주의 국가인 아프칸의 멸망과 회교인들에 대한 탄압, 알카에다의 와해밖에 없다.어느모로 다져봐도 실익이 없는 일을 저지를 이유는 없는것이다.

2. 테러에 대한 경고와 보고 무시.

2001년 2월에 미국 국가 안보국(NSA)는 테러리스트들의 비밀암호를 해독했다고 UPI 통신이 발표했다.전문가들은 911 테러와 같은 고도의 동시 다발적인 테러를 일으키기 위해선 4년의 준비기간과 100명의 준비요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온갖 위성을 사용하고 에쉴론 프로젝트로 전세계 모든 이메일과 통신등을 감청할수 있는 미국이 그 사전징조를 몰랐다는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만약 진짜 몰랐다면 이는 명백한 직무유기로 누군가가 책임져야 하나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

2002년 3월 미국 맥키니 의원은 행정부와 정보기관에 대한 의회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의원들의 반대로 무산된다.

2001년 6월에 독일 정보부 BND는 미국 정보부에 '중동의 테러분자들이 민간 항공기를 납치하여 그 비행기를 미국 상징물을 격파하는 무기로 사용할 것'이라고 주의를 주었다.(2001.9.14. 프랑크푸르트 알케마이네 자이퉁)

2001년 7월 애리조나 주재 FBI 요원은 애라조나 비행학교에서 많은 중동사람들이 조종훈련을 받는데, 빈라덴이나 테러리스트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고 보고하였다.

2001년 8월 부시는 빈 라덴이 민간 여객기를 납치할 것이라는 보고를 받았다.(2001.5.15. CBS, CNN)
2001년 8월 FBI가 보스턴에서 빈 라덴과 관련된 무장 단원을 체포했는데, 그는 비행훈련을 받은 적이 있고,
체포될 당시 보잉 항공기 정비교본과 비행요강을 가지고 있었다. (2001.9.13 로이터 통신)
미 해군 정보장교였던 브리랜드는 러시아에서 정보원(나중에 암살당함)으로부터 911 테러에 대한 정보를
입수 했지만 미국으로가 봤자 안 통한다는 것을 알았다.그래서 브리랜드는 케나다 정부에게 이를 폭로하려 했지만, 이를 알아차린 미국 정부는 그를 신용카드 사기범으로  몰아 케나다 경찰에 체포를 요청했고, 그는 2000년 12월 6일 체포되 구금당하게 된다.

2001년 8월 11일 그는 911 테러에 대한 내용을 종이에 적어 봉투에 넣어 간수에게 전해 주었는데, 2001년 9월 14일 에서야 열람되었지만 비밀로 묻혀버린다. (2001.10.23 토론토 스타)

2001년 9월 초 미네소타의 FBI 요원이 테러 용의자 무샤우이를 체포해, 그가 비행교습을 받았고, 비행기로 세계
무역센터를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그의 노트북의 검사 허가를 신청했지만 거절당했다.
(2002.5.20. 뉴스위크)
진주만 기습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 채널에서 보고와 첩보가 접수 되었지만 일부러 무시하거나 방해하였다.
 
3.부시 대통령 측근들 테러공격이 있기 며칠 전에 항공사 주식을 전량 매각.

2001년 9월 17일 일요일 "60분(60 Minutes)"이라는 CBS 텔레비젼 프로그램은 부시 대통령의 가까운 동료들이 갑자기 그리고 불가사의하게, "테러리스트" 공격들이 있기 단 며칠전에 그들의 모든 항공사 주식들을 팔았다고 폭로했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곧 이어 CFR(프리메이슨 조직)에 의해 조종받는 언론에 의해 묻혀버렸다 . 또한 항공기 충돌 테러가 벌어지기 직전 무역센터 내부에 입주한 금융회사와 민간 항공사 사이에는 주식을 팔고
사는 대량거래가 있었다. 수 많은 거래 회사 중에 유독 항공사 주식으로는 테러로 피해를 당한 2개의 항공사 뿐이었다. 이는 테러가 일어날 것을 미리 안 세력이 있다는 뜻이다.
블룸버그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9.11 사건이 일어나기 하루 전에 아메리칸 항공사의 주식거래량은 통상 거래량의 5배 정도로 폭증했고, 유나이티드 항공사의 주식거래량도 9.11 사건이 일어나기 3일 전에 폭증했다. 또한 세계무역센터에 입주해 있었던 금융회사 모건 스탠리와 사건 현장 부근에 있는 금융회사 메릴린치의 주식거래량도 통상 거래량보다 최저 12배에서 최고 25배나 폭등했다.

미국 증시감독위원회의 조사를 인용한 『월 스트리트 저널(Wall Street Journal)』 2001년 10월 2일자 보도에 따르면, 9.11 사건으로 폭락할 주식들, 예를 들면 항공사의 주식, 보험사의 주식, 여행사의 주식을 미리 내다 팔고, 그 대신 불경기에 가장 잘 나가는 5년 만기 국채를 사들여서 50억 달러의 이익을 챙겨간 세력이 있다고 하였다.
 
4. 아마추어 경비행기 조종사가 대형 여객기를 조종했다?

테러범들이 항공교육을 받았던 플로리다의 비행학교 관계자들은 하나 같이 테러범들이 경비행기 조차 서투르게
조종할 정도의 아마추어였다고 증언하고 있다.세계무역센터가 먼 곳에서도 잘 보이는 매우 커다란 목표물이라고 해도, 매우 빠른 속도로 저공비행을 하면서 목표물에 돌진하여 오차 없이 충돌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착륙 유도 장치도 없는 건물에 대형 여객기를 순전히 육감으로 정확하게 들이 받는 것은 항공모함에 전투기 착륙시키는 것보다 어려운 기술이다.

비행기 조종은 항로를 정확히 유지해야 하는데 관제탑의 도움없이 육안으로 목표물을 찾아가기는 쉽지 않다. 고층건물로 둘러싸인 맨해튼 상공에서 여객기를 저공으로 조종하여 단 한번에 목표물에 충돌한 것은 매우 숙련된
조종술이 아니면 가능하지 않다. 세계무역센터에 충돌한 것은 여객기를 완만한 횡경사의 각도를 유지하는 고도의 조종술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특히 한 비행기에 4명에서 5명씩 탑승해 수십명의 승객들과 대치하고 있는 긴박한 순간에 이렇게 정확히 목표물과 충돌한다는 것은 베테랑 조종사가 아니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 지적이다.직선 비행으로도 힘든데 보스턴에서 내려오던 아메리칸항공 소송 항공기는 뉴욕만 북쪽에서 방향을 바꿔 크게 선회를 한 뒤 세계무역센터 빌딩과 부딪쳤다. 세계무역센터 남쪽 건물에 충돌한 여객기의 속도는 시속 586마일(943km)이었으며, 북쪽 건물에 충돌한 여객기의 속도는 시속 486마일(782km)이었다.시속 586마일의 속도는 당시 그 여객기의 고도를 감안할 때 그 여객기의 최고비행속도를 훨씬 초과하는 것이었다고 보잉사는 밝히면서, 그러한 속도로 계속 저공비행을 하는 경우 공중에서 폭발할 가능성도 있었다고 지적하였다.당시 저공에서 고속으로 돌진하는 여객기의 속도와 바람 등을 감안한다면 목표물에 접근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조종사들이 장애물이 없는 태평양 상공에서 미군 항공모함이나 순양함을 대상으로
자살공격을 자행했지만 그 성공률이 50%에 미치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럼 진실은 무엇일까?

납치범들은 비행기를 납치해 조정실을 장악한 후 비행기 조정은 하지 않고, 자동비행으로 전환시킨 것이다.
현재 여객기 기술은 조종사가 없어도 이륙, 착륙, 비행이 모두 가능할 만큼 발전했다.또한 무인 조정 기술도 발전해 얼마전 무인 비행기인 프레데터가 알카에다 조직원에게 정확히 미사일을 날린 적도 있다.실상은 자동비행으로 전환된 비행기를 지상에서 조종해 세계무역센타 주변해 착륙 유도 시스템을 갖춘 후 충돌시킨 것이다.여객기를 원격조종하여 안전하게 착륙시키는 기술을 이미 오래 전에 개발하여 사용해오고 있다. 물론 이런 공작은 CIA가 첨단 항공 기술자들과 함께 하게 된다.
 
5. 공개하지 않는 블랙박스

9.11테러 당시 세계무역센터에 충돌한 항공기 2대, 미 국방부 건물에 충돌한 항공기 1대, 워싱턴으로 향하다
공중에서 미 공군의 요격을 받아 파괴된 것으로 보이는 항공기 1대 등 4대의 항공기에는 총 8개의 블랙박스가
있었다. 그러나 현재 이들 블랙박스 중에서 회수된 것은 2개 뿐이며 이것마저도 현재 내용이 공개되지 않고 있다. 지상에서 피랍 여객기의 원격조종장치를 가동할 경우, 블랙박스는 자동적으로 작동을 중지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블랙박스를 찾아내어 그 기록 내용을 분석하면 원격조종장치의 가동여부를 알 수 있다. 블랙박스의 음성기록장치(CVR)는 마지막 30분 동안의 조종실 대화를 녹음하며, 비행정보기록장치(FDR)는 비행속도와 고도 및 사고 당시 비행기 작동체계의 작동상태를 기록한다. 그러므로 블랙박스는 9.11 사건의 의혹을 풀어줄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블랙박스는 항공기가 충돌할 때 충격을 가장 적게 받는 항공기의 꼬리부분에 설치되어 있다. 블랙박스는 충돌하는 순간 자기 무게의 3,400배의 충격에도 견딜 수 있고, 섭씨 1,100도의 고열 속에서 30분 동안 견딜 수 있도록 특수제작되어 있다. 블랙박스에는 주파수 발신장치가 들어있는데, 발신장치의 건전지 수명은 6년이다.

펜실베니아주 서부지역에 추락했다고 발표된 여객기(유나이티드 항공 제93편)에 설치되어 있던 블랙박스는 다음날인 9월 12일에 발견되었다.국방부 청사에 충돌했다고 발표된 여객기(유나이티드 제77편)에 설치되어 있던 블랙박스는 9월 13일에 발견됬다.미국 정부는 세계무역센터에 충돌한 두 여객기에 설치되었던 블랙박스를 찾지 못했다고 발표했는데, 전문가들의 견해에 따르면, 항공유가 한꺼번에 타면서 생기는 온도는 섭씨 800도에서 1,000도라고 한다. 그런데 블랙박스는 섭씨 1,100도의 고열 속에서도 견딜 수 있도록 특수 제작되었는데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은 미심쩍으며,미국 교통안전국(NTSB)은 미국에서 비행기가 추락한 뒤에 블랙박스를 발견하지 못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밝혔다.블랙박스는 심한 충격과 외부 압력 등에 견디게끔 대단히 견고하게 만들어져 있어 항공기가 폭발, 추락해도 사라지지 않고 회수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블랙박스 2개만이 회수되고 또 이것 마저 공개되지 않고 있는 것은 테러에 사용된 항공기가 누군가에 의해
원격 조정장치로 움직여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블랙박스의 기록내용을 완전히 해독하려면 통상 3개월이 걸리며, 만일 블랙박스가 손상되었을 경우에는 그 기록내용을 완전히 해독하려면 6개월이 걸린다고 한다.이 뿐 아니라 세계무역센타 붕괴현장은 어느 각도에서도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6. 항공기 탑승자 명단에 없는 테러범들



9.11테러가 일어난 직후 미국 정부는 테러가 일어날 상황을 거의 인식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FBI도 이들 테러범들의 테러 기도 징후를 파악하지 못했고 NSA(도청을 주임무로하는 감청 정보기관)를 통해전세계 통신을 감청하는 CIA도 테러범들의 동향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 정보기관은 테러가 일어난지 단 이틀만에 테러범 19명의 명단을 내놨다. 특히 이들 19명은 대부분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엘리트 유학생들로서 대부분이 그동안 테러리스트 명단에 올라가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세한 신상명세까지 공개됐다.

그러나 CNN이 항공사가 보관하고 있던 탑승자 명단 자료를 확인한 결과 이들 납치범들의 이름은 탑승자 명단에 없었다.사우디아라비아 외무장관은 이들 중 5명은 비행기에 탑승한 적도 없고, 죽지도 않았다고 한다.또한 스튜어디스 스위니가 핸드폰으로 알려준 납치범의 좌석번호와도 일치하지 않았다.
 
7.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도착한 재난 구호팀

부시 대통령은 연방 비상 관리국(FEMA)을 관리하는데 공격이 실행되기 바로 전날 밤에 뉴욕으로 도시 검사 및
구호 팀을 보냈다. FEMA 관리, 톰 케네디 언론에서 2001년 9월 11일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현재 이 재앙에 있어서 뉴욕 시를 지원하고자 배치되었던 최초의 팀중 하나이다. 우리는 월요일 밤 늦게
도착하였고[그날은 9월 10일로 바로 전날 밤] 화요일 아침에 작업에 바로 착수했다."
 
8. 테러 두 달 전에 빈라덴은 CIA와 접촉했다.

2001년 10월 31일에,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Le Figaro)"는 오사마 빈 라덴이 2000년 7월에 고위 CIA 직원을 만났다고 보도했다. 그 때 빈 라덴은 이미 두 건의 미국 대사관 폭파와 콜 군함 공격에 가담하였기 때문에 재판을 위해 체포영장이 발급되어 수배중이었다. (현상금 500만 달러) 빈 라덴은 2001년 7월 4일부터 14까지 아랍에메레이트 두바이의 미국 병원에 신장병 치료차 입원했다.그가 입원하고 있는 동안 가족, 고위 인사, CIA 요원 등이 방문했다.7월 14일 그는 자신의 개인 제트기를 타고 떠났다.
 
9. 비행기 충돌 이후 저층에서 또 다른 폭발이 있었다.

ABC 뉴스는 2001년 9월 11일에 "폭파지점"에서 탈출한 사람들과 인터뷰했다.자신을 밝이지 않은 한 사람이 말했다.

"우리는 잠시동안 계단에 갖혔다. 나는 85층에서 아래로 내려왔다. 우리가 막 그 빌딩을 떠나려 할 때,(내부에서) 폭발이 한 번 더 있었다." 한 여자의 증언이 뒤따랐다."나는 계단에 갖혔다. 우리가 로비에 도착했을 때 폭발이 있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워낙 튼튼하게 설계된 세계무역센터가 혹시 안 무너질까봐 저층 부위에서 기초를 흔드는 폭발을 시도한 것이다.

10. 세계무역센터 피격 후에도 워싱턴을 방어하지 않는 전투기

북미 대공방위사령부인 NORAD는 AA21이 납치당한 지 18분 후에 관제탑으로부터 보고를 받았다.비행기가 항로를 벗어나면 전투기가 출동해 제어하고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격추시킬 수 있다.가까운 공군기지가 있었는데도 200마일이나 떨어진 오티스 공군기지에 출격을 지시해 건물 충돌을 막을 수 없었다.미국의 상징물인 세계무역센터가 첫 번째 피격되 비상상황에 처하고, 두 번째 피격되 테러가 확실해져 뉴욕경찰이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수도 워싱턴을 보호할 전투기는 출격하지 않았다.

8:20  AA11 레이더 접촉 끊어지고 항로를 벗어남.
8:30  AA11 승무원이 납치 당하고 있다고 보고함.
8:45  AA11 세계무역센터에 북쪽 타워에 충돌함.
8:55  AA77 관제탑과 교신이 끊어짐.
9:05  UA175 세계무역센터 남측 타워에 충돌.
9:06  뉴욕 경찰은 테러행위라 단정하고, "테러단의 공격이다. 펜타곤에 알려라"라고 하는 것이 방송됨.
9:25  AA77기에 탑승한 법무장관 올슨의 부인 바바라 올슨이 남편에게 핸드폰으로 비행기 납치 사실을 알림.
9:30  부시가 TV를 통해 틀림 없는 테러단의 행위라고 단정함.
9:38  AA77을 통제하기 위해 랭리 공군 기지에서 F-16 두 대가 출격함.
9:40  AA77 펜타곤 앞에 추락.
9:50  엔드류스 공군기지에서 전투기 처음 출격
10:00  UA93 탑승객이 911에 전화를 걸어 납치 사실을 알림.
10:10  UA93 펜실바니아주 생크스빌에 추락.

AA77기는 8시 55분에 비콘 발신이 끊어졌고 9시 25분에 핸드폰으로도 납치 사실이 알려졌지만, 9시 38분에서야 워싱턴에서 130 마일 떨어진 랭리 공군기지에서 전투기가 출격하게 된다.때문에 9시 40분 펜타곤 피격을 막을 수 없었고, 9시 50분에 워싱턴에서 15 마일 떨어진 엔드류스 공군기지에서 전투기가 출격하게 된다.

엔드류스 공군기지에서 즉각 전투기가 이륙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마이어스 합참 본부장은 9월 14일 엔드류스
공군기지에 전투기가 없다고 변명하였다. (CBS 저녁뉴스)엔드류스 공군 기지는 수도를 방위하는 주요 공군 기지로 2개 편대(121, 113 전투편대)가 항상 대기하고 있다.말이 되지 않음을 깨닭은 행정부는 엔드류스 공군기지에 전투기는 있지만 비상 대기 상태가 아니었다고 정정했다. (2001.9.17. USA Today) 하지만 엔드류스 공군기지는 수도 방위를 책임지는 곳이기 때문에 항상 전투대기 상태에 있다.이렇게 큰 음모를 자행해 놓고도 앞뒤가 맞지 않아 모순점이 많은데도 아무도 문제삼지 않았다.

11. 비무장으로 발진한 전투기

미 공군의 크레그 맥킨리 소장은 2003년 5월 23일 9.11 테러사건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 2대의 민간 항공기가 월드트레이드센터에 충돌한 직후 백악관경호팀의 요청에 따라 백악관 경비를 위해 긴급발진한 2대의 F-16기가 모두 비무장상태였다고 밝혔다.

이들 전투기들은 훈련비행을 마치고 갓 귀환한 전투기였으며 백악관을 향해 비행하고 있던 것으로 당시 추정됐던 아메리칸항공 93기를 격추시킬 수 있는 무기를 탑재하지 않고 있었다. 이들 전투기들은 앤드류공군기지에 있던 제113 영공수비대에 소속돼 있었다. 또 긴급상황에 따라 버지니아공군기지에 있던 공군 북부방위사령부 소속 F-16기들이 즉각 발진했었으나 여전히 아메리칸항공 77기가 국방부 건물에 충돌한지 12분이 흐른 후였다. 더구나 무장을 했다 하더라고 상황이 달라질 것은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맥킨리 소장은 F-16기들이 무장을 하거나 제 때 발진을 했다 하더라도 전투기가 민간기를 격추시킬 권한은 공군에 부여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9.11 테러사건 발생 때 북미영공방위사령부의 미국방위사령관이었던 래리 아놀드 예비역소장은 아메리칸항공 93기가 펜실베이니아주의 시골지역에 떨어진지 5분 후에야 조지 W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자살테러를 시도하려는 민간항공기를 격추시키라는 명령이 하달됐다고 밝혔다. 미국은 9.11 테러사건이 발생한 후 미국 영공을 비행중인 민간항공기를 공군이 자체적으로 판단해 '적 목표물'로 지정할 수 있도록 관련법을 개정했다. 그 이전에는 오직 대통령만이 그같은 조치를 내릴 수 있었다.

수도를 방어하는 전투기가 비무장 상태로 있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며 이는 혹시 무장한 전투기가 일을 그르칠까봐 미리 대비시켜 놓은 것으로 볼 수 있다.

12. 총기와 흉기를 가지고 검색대를 통과한 테러범

20명의 테러범들은 3개의 다른 비행장 검색대를 총기와 흉기를 가지고 통과하였다.첨단 X ray 검색대를 한 명도 걸리지 않고 통과한 것은 내부에 공모자가 있기 때문이다.특이한 점은 이 비행장들은 이스라엘계 회사가 관리한다는 점이다.이스라엘과 정보조직 모사드는 프리메이슨이자 세계적 금융재벌인 로스차일드의 사조직처럼 움직인다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13. 부시 행정부가 결정적인 증거물로 제시한 영상녹화물(videotape) 조작

2001년 12월 13일 미국은 9.11 사건이 오사마 빈 라덴의 지령에 의해 일어났음을 입증한다는 결정적인 증거물을 공개했다. 미 국방부가 11월말에 입수했다고 하는 그 영상녹화물에는 11월 중순 파키스탄의 수도 카불에서 찾아간 방문객을 맞이한 오사마 빈 라덴이 자기 부관들과 함께 9.11 사건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촬영되어 있다. 그 영상녹화물에 나타난 오사마 빈 라덴은 오른손잡이 이다. 그러나 1999년 6월에 미 연방수사국은 오사마 빈 라덴을 현상수배하면서 그가 왼손잡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그 영상녹화물에 나타난 오사마 빈 라덴은 귀고리를 달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의 사진 가운데 손목시계 이외의 다른 장신구를 단 모습은 없었다.

그 영상녹화물은 대화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잡음이 심하고, 화면도 사람들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어둡다.그런데 카불에서 찾아간 방문객은 오사마 빈 라덴에 비하면 음성도 분명하고 얼굴도 번번이 화면 정면에 나타난다.오사마 빈 라덴의 음성은 더듬거리는 소리로 되어 있고 얼굴은 옆모습만 보이고 있다.

영국 언론 『가디언(Guardian)』 2001년 12월 15일자 기사는 영상녹화물을 제작하는 전문가의 견해를 전하면서, 그러한 영상녹화물은 디지털 화상합성과 음향삽입기술로 쉽게 조작할 수 있으며, 잡음은 마지막 조작단계에서 집어넣을수 있다고 보도했다. 그 영상녹화물에는 오사마 빈 라덴이 9월 11일에 "우리 시간으로" 5시 30분에 라디오를 틀었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마치 영상녹화물의 시청자를 의식한 듯이, 미국과 아프가니스탄의 시차까지 계산하여 현지 시각을 밝히고 있다.그 영상녹화물이 촬영된 시점은 오사마 빈 라덴을 겨눈 미군 폭탄이 우박처럼 쏟아지고 있었던 때였다. 목숨이 위급한 오사마 빈 라덴이 미군 공습을 피하여 피신해야 하였던 때인데도, 그는 여유만만하게 자신의 극비정보를 외래방문객이 촬영하는 영상녹화물에 남겨주고, 그것이 미 국방부에 넘어가도록 방치하였다는 이야기 이다. 이것이 가능한 일일까?

그 영상녹화물이 공개되고 1주일이 지난 12월 30일 독일 공영텔레비전(WDR)의 시사프로그램은 그 영상녹화물에 자막으로 나오는 영어번역문이 조작되었다고 폭로했다.오사마 빈 라덴이 "우리는 (9.11 사건의) 사망자를 사전에 계산했다"고 말한 것으로 번역되어 있는데, '사전에 (in advance)'라는 말은 원래 그의 말에는 없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지난 화요일부터 이날 테러가 일어난다는 정보를 갖고 있었다"는 말도 대화내용에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미국에 가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그들은 테러작전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몰랐다."는 말도, "그들이 미국으로 가기를 바랐다"고 번역해야 하며, 그 다음에 나오는 말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음질이 나쁘다고 한다.공인번역가 2명과 함께 영상녹화물 내용을 분석한 독일의 아랍학 교수는 "미국인 번역자들이 미국 정부가 듣고 싶어하는 문장을 여러 곳에 삽입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나는 그 부분을 확인하려고 몇 번이나 들었지만 헛수고였다"고 말했다.부시 행정부는 나중에 영상녹화물의 영어번역에 일부 실수가 있었다고 시인했다.

오사마 빈 라덴은 9.11 사건 직후 서방 언론에 보도된 첫 발언에서 자기는 9.11 사건과 무관하다고 밝혔다. 그는 9.11 사건이 이스라엘, 러시아, 인도, 세르비아의 테러조직이 자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그는 9.11 사건이 악마가 저지른 범죄이며, 자기의 조직 알 카에다는 미국을 적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몇 주가 지난 뒤에 촬영된 영상녹화물에서 그는 알라신은 미국의 가장 취약한 곳을 타격했으며, 이 공격을 완수한 이슬람 전사들은 하늘의 복락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가 왜 불과 몇 주 사이에 자신에게 불리한 양극단을 오가는 말을 할 필요가 있는가?
 
14. 비행기 잔해가 없고, 조금밖에 파괴되지 않은 미 국방성 피해 현장

미 국방부의 발표에 따르면, 국방부 청사 사건현장에서 미군 56명, 민간인 직원 69명, 여객기 탑승자 64명 등 모두 189명이 사망했으며 111명이 부상당했다고 한다. 미 국방부 청사에 대한 테러사건과 관련하여 지금 세간의 주목을 끌고 있는 것은 프랑스의 언론인 티에리 메쌍이 펴낸 화제의 책 『2001년 9월 11일, 믿을 수 없는 협잡극: 펜타곤에 충돌한 여객기는 없었다』이다.

이 책은 테러리스트들이 피랍 여객기를 조종하여 미 국방부 청사에 충돌했다는 미 국방부의 발표를 뒤집는 충격적인 내용을 전해주고 있다.미국 스탠포드 대학의 응용물리학 교수 스티븐 블록의 분석에 따르면, 미 국방부 청사에 충돌한 여객기 보잉 757기는 무게가 145t이나 되고 항공유 6만2천리터를 싣고 있었으며, 시속 850km로 충돌하였다고 한다.보잉 757기의 충돌에 의해서 발생하는 파괴력은 무게 20t짜리 초대형 재래식 폭탄 25개(TNT 500kg)가 한꺼번에 폭발하는 엄청난 파괴력(히로시마 원자폭탄 파괴력의 1/25)이라고 한다.그러나 이상하게도 미 국방부가 공개한 9.11 사건 당시의 현장사진에 나타난 파괴현장은 그러한 엄청난 폭발에 의해 파괴된 모습이 전혀 아니었다.

국방부 청사는 지상 다섯 층으로 된 건물이 다섯 겹으로 연결되어 거대한 오각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 국방부가 공개한 현장사진에 촬영된 파괴현장은 다섯 층 건물에서 맨아래층이며, 그것도 제일 겉에 있는 건물의 맨아래층 이다. 공중에서 지상을 향해 비스듬한 각도로 돌진했던 여객기가 어떻게 맨아래층, 맨겉의 건물에 충돌할 수 있었을까? 파괴현장 사진에 촬영된 파괴부분의 너비도 19m에 지나지 않았다.

보잉 757기는 길이가 47.32m, 날개를 포함한 너비가 38m인데, 어떻게 파괴부분이 19m밖에 되지 않는 것일까?
이와 관련하여 미 국방부는 피랍 여객기의 기체 전체가 국방부 청사에 충돌한 것이 아니라 청사 앞 잔디밭에 추락하면서 국방부 청사에 충돌하였다고 주장하였다.만약 국방부의 주장대로 피랍 여객기가 잔디밭에 추락하면서 청사에 충돌하였다면, 여객기의 항공유 6만2천리터가 한꺼번에 불타면서 엄청난 화재가 일어났어야 한다. 그러나 국방부 청사는 화재로 불탄 것이 아니라 폭발에 의하여 파괴되었다.

사건 이튿날 미 국방부는 피랍 여객기가 충돌했다는 사건현장의 잔디밭에 서둘러 자갈을 깔고, 그 위에 모래를
덮어 버렸는데 그것은 사건현장을 은폐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살만한 행동이다.보잉기라고 발표된 그것의 100t을 넘는 무게와 시속 400~700㎞에 달하는 속도에도 불구하고 건물의 겉표면만을 파괴했고, 건물 정면으로 충돌했다는데 근접한 가로등은 물론 주차장은 파괴되지 않았다. 또, 비행기 잔해라 할 물체를 본 사람은 없으며, 감시카메라 역시 어떤 순간, 어떤 각도에서도 보잉기를 보지 못했으며,비행기 승객들의 주검은 발견되지 않았다.

파괴현장 사진에는 국방부 청사에 지름 2.3m의 구멍이 뚫려있는 것이 확인되는데, 그 구멍은 건물이 다섯 겹으로 되어 있는 청사건물 가운데서 건물을 세 겹이나 뚫고 들어간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렇다면 그 구멍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피랍 여객기의 기체가 지상충돌 순간 깨져나가면서 약간 뾰족한 모양으로 생긴 머리부분이 기체에서 떨어져나가 건물을 뚫고 들어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

그러나 여객기의 머리부분에는 전자항법장치가 들어있기 때문에 기수표면은 금속이 아니라 비금속물질인 카본(carbon)으로 덮여있다. 따라서 약한 비금속물질로 된 머리부분이 견고한 석재(인디애나산 석회암)로 되어 있는 세 겹의 건물을 뚫고 들어간다는 것은 불가능 하다. 그렇다면 그 견고한 건물을 뚫고 들어간 물체는 무엇이었을까? 티에리 메쌍은 그 미확인 관통물체가 미사일 파편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가 보도한 현장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국방부 청사에 충돌한 것은 보잉 757기가 아니라 8-12명 정도가 탈만한 소형비행기로 보였으며 전투기가 비행할 때 내는 고음의 쇳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또 다른 증언자는 사건현장에서 미사일이 날아오는 것 같은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사건발생 직후 『유에스에이 투데이(USA Today)』의 저널리스트 마이크 월터(Mike Walter)는 『워싱턴 포스트』와 CNN 방송에서 사건현장을 설명하면서 미 국방부 청사에 충돌한 것은 여객기가 아니라 날개가 달린 순항미사일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사건발생 당시 워싱턴 근교에 있는 덜레스 공항의 지상관제소에서 근무하고 있었던 관제사 대니얼 오브라이언 (Danielle O'Brian)은 시속 800km의 고속으로 날아가는 미확인 비행물체를 레이더에서 발견하였다고 하면서, 그처럼 고속으로 비행하는 것은 여객기가 아니라 군용기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 국방부의 주장에 따르면, 피랍 여객기가 국방부 청사 앞 잔디밭에 추락하면서 청사에 충돌하여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피랍 여객기인 보잉 757기는 무게 145t, 길이 47.32m, 폭 38m의 대형물체다. 그만한 대형물체는 지상충돌로 산산조각이 난다고 해도 거대한 잔해를 남기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국방부 청사의 파괴현장에서는 여객기의 잔해가 보이지 않았다. 미 국방부는 사건발생 이틀 뒤에 여객기의 등부분을 발견했다고 발표했을 뿐이다. 사건발생 직후 미 연방수사국이 수사에 들어갔지만, 미 국방부의 요구에 따라 연방수사국 수사진은 사건현장에서 철수해 국방부 청사에 대한 테러사건은 수사 자체가 진행될 수 없게 되었다.

911 테러로 미국이 얻은 수확

1. 아프카니스탄 침공 (석유 파이프라인 건설) 

2. 애국자법 제정

비밀영장, 비밀체포, 비밀재판, 비밀사형, 비밀추방이 가능해 중동 사람들이나 불법체류자, 이민자들이 마구잡이로 연행되고 있으며, 현재 1200명이 장기간 구치소에 있고 일부는 강제 추방되었다.군사 재판소가 설치되 비밀 사형도 가능하며, 사형이 언도되어도 항소 할 수 없다.이들은 가족면회도 거의 허락되지 않고, 비밀유지가 보장된 변호사 접견이 감청되고 있다.또한 모든 이메일들의 감청이 허락되게 되었다.애국자법으로 미국 비자 발금이 엄격해져서 미국 비자 받기가 하늘의 별 따기 처럼 어렵게 됬다.

3. 군비를 증강시켜 군수업체의 배를 불려 주었다.

아프카니스탄 전쟁에서 전폭기들은 1만 7천개의 폭탄을 투하했고, 월 평균 18억 달러를 지출했는데,이로써 군수 업체는 막대한 수입을 올리고, 주가는 연일 상승했다.911 테러로 국방비가 대폭 증대되고, 아프칸 전쟁으로 폭탄을 쏟아 부어 돈을 벌었다.무기산업에 투자한 부시 가문과 빈 라덴 가문도 짭짤한 재미를 보았다.
 
4.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억압을 무마시켜 주었다.(인종 혐오주의 확산)

회교인들에 대한 분노가 인종 혐오 수준에까지 이른 미국인들은 이러한 행위를 문제 삼지 않았다.인종혐오주의는 이민자와 소수민족에 대한 핍박을 정당화 시켜 인권을 유린시킨다.

5. 이라크 침공으로 원유 개발권을 얻게 되었다.

테러 사건 이 후 미국은 아무런 근거도 없이 이라크를 테러 배후로 지목하고 악의 축으로 규정했다.또한 이러한 미국의 정책에 동조하지 않는 나라는 미국의 적이라는 일방주의 정책을 폈다.이라크 침공의 이유로 이라크가 대량 살상 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하였지만, 이라크가 UN 사찰을 성실히 받는 상황에도 전쟁준비를 그치지 않았다.
사실 수년간 경제봉쇄 조치로 피폐해진 이라크는 대량 살상 무기를 개발해 남의 나라를 침공할 힘도 없었다.국민들은 굶어 죽고 있고, 병원에는 약이 없어 환자들이 죽어가고 있으며, 분유까지 생산하지 못하게 해 어린이들이 죽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아서뉴먼'이라는 핸리디콘으로 알려진 과거 NOAA 등에서 근무했던 미정부 과학자가 폭로한 9/11 증언이다.이것은 최초로 실명과 신분이 확실한 내부자의 폭로 인셈이다.


Henry는 9/11 사건이 나기 훨씬 전에 이러한 일이 계획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실제 사건이 발생하기 몇 시간 전 사무실에서 브리핑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직장 동료들과 함께 말입니다. 당시 그는 태연하게 소식을 전하는 자신의 상관과, 역시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이 무덤덤하게 브리핑을 듣던 동료들에게 충격을 받았었다고 합니다. 브리핑의 목적은 당일 뉴스를 통해 실제 사건을 접하게 되더라도 직원들이 놀라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오늘 뉴스에서 이런 소식을 접하게 되더라도 당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 우리 계획의 일부니까요."

우리는 Henry 의 이 증언내용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 잘 인식하고 있습니다. 9/11 사건이 발생한 지도 벌써 5년 이상이 경과되었는데, 어쩌면 내부자로써는 처음으로 Henry가 이 사건의 음모에 대해 공개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추가적인 내용들:

•트윈 타워와 충돌한 두 대의 항공기들은 원격으로 조종되었습니다 (오토 파일럿 모드를 무력화시킬 수 있도록 소프트웨어가 개조되었고, 조종사들의 조작도 우회할 수 있도록 고안되었음). 그리고 원격 조종은 사고 지역에서 수천 마일 떨어진 위치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국방부(Pentagon) 건물과 충돌한 항공기 역시 원격 조종에 의해 비행하던 소형 해군 제트기였습니다. 공기 역학적인 문제 때문에 Boeing 757급 항공기가 그렇게 낮은 고도에서 빠른 속도를 유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저공 비행을 하려면 속도를 늦추는 수 밖에 없습니다.

•언론을 통해 공개되었던 승객들의 핸드폰 통화 내용은 모두 조작입니다.

•Pennsylvania 주 상공에서 추락했거나 격추된 것으로 알려진 Flight 93 기는 계획에 차질이 생긴 케이스라고 합니다 (원래는 또 다른 건물이 표적이었으나, 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모른다고 합니다).

•Flight 77(Pentagon 건물과 충돌한 것으로 알려진 항공기)의 승객들은 어떻게 되었느냐고 묻자,이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답변했습니다.

• Osama bin Laden 은 9/11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그는 그저 미국 정부를 위해 일하는 자산이라는 얘기만 덧붙였습니다.

9/11 사건에 대해서 아는 바는 이게 전부라고 합니다.




※ 뉴욕경찰은 십년이 지난 지금, 2010 2월 10일 공중에서 촬영된 당시 사진들을 최초로 공개하였다. 공중에서 촬영된 이런 자료가 있음을 여지껏 숨긴채 비밀로 했다는 이야기로 철저한 진상 조사가 아닌 일부러 자료들을 숨기려 했다는것을 짐작할수 있다.



그리고..이제 수면위로 올라오고 있다...

Mullu Speak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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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 Icon
    삼조선

    구체적인 사실들이라면 태평양 건너 남의 나라 이야기라도 좀 섬뜩하군여..

  2. 비밀도 아닌 이미 전세계가 다 아는 사실들입니다.전부 언론에서도 확인 보도된 내용들이구요.제가 간략하게 나열했을뿐 당시 구체적인 조사 자료들 양은 어마어마 합니다.그만큼 큰 충격의 사건이었죠.

  3. Blog Icon
    오늘하루

    시대정신이라는 다큐영화에서도 말했었는데... 정말 소름돋았습니다.
    아 세상은 음모로 가득찬 거야!!!!!!라고 한창 부르짖고 다닌 적이 있는데 ㅋ
    지금은 이런 음모론 봐도 그러려니 하고 말고 있습니다. 어쨌든 좋은 글 감사합니다.

  4. 안다해도 개인이 달리 할것도 없고 달라질것이 없다는 생각도 들고 해서 관심이 없어지는거죠.시스템도 그렇게 만들어져 있구요.하지만 알고있는것과 아예 모르는것과는 천지차이라고 생각합니다.

  5. Blog Icon
    아는이에게

    911테러 왜일어난걸까요 물으니
    언제일어난거죠?
    2001년이요.
    몰라요 옛날일어난걸 멋하러 알려해요..
    그러네요
    그냥 감사합니다..

  6. Blog Icon
    wafasdf

    미친것들 ㅉㅉㅉ 아직도 이따위 음모론이나 믿네 이런 음모론 믿는건 한국인 뿐이지 ㅉㅉㅉ 미국인들 앞에서 그딴소리 짖껄이지나 마라 ㅉㅉㅉ 시대정신? 그거 세계적으로 쓰레기 취급당하는 삼류 다큐다 근데 겨우 그런거나 보고서 음모 드립이나 치네 911이 빈라덴과 알카에다의 소행이란건 이미 증거가 여러번 나왔고 밝혀진 사실이다 도대체 왜 음모론 드립이나 치는거야?

  7. 그땐 여덜살인가.?엄마아빠가어린아이갖구장난ㅊㅣ진않앗을거같은데...뭐믿는건아니지만 아직어린예언자인데비판적으로생각하지맙시다!님글도잘읽엇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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