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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나치 청산을 주도한 샤를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

2010.06.10 15:46





전후 프랑스의 나치 청산을 주도한 샤를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의 처형법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 그것은 내일의 범죄에게 용기를 주는 것과 똑같은 어리석은 짓이다.

- 레 레트르 프랑세즈(주간지 프랑스문학)

국가가 애국적 국민에게는 상을 주고 배반자에게는 벌을 줘야만 비로소 국민들을 단결시킬 수 있다. - 드골

나치 협력 민족반역자에 대한 재판은 특히 파리재판소가 거물급 유명 인사들을 거의 다루었다. 이 때문에 프랑스뿐만 아니라 세계의 이목이 파리에 집중됐다. 드골의 과거청산 작업은 히틀러가 항복하기 전에 이미 시작됐기 때문에 나치전범을 심판한 뉘른베르그의 국제재판보다 시기적으로 2년 정도 앞서 열렸다.

드골이 주도하는 나치 협력 반역자 대숙청은 민족을 배반한 무리들을 모두 지배세력에서 뿌리뽑았고 악질적이며 광적인 나치협력자들을 사형과 무기강제노동형에 처함으로써 다시는 지배세력으로 군림할 수 없도록 영원히 매장해 버리는 데 성공한 훌륭한 본보기가 된다.

파리의 숙청 재판정에 가장 먼저 끌려나온 피고들은 널리 알려진 나치 협력 언론인들이었다. 이들은 대체로 전쟁 전에 친 독일 언론인으로 낙인찍힌 부류들이고 파시즘을 찬양하며 나치즘을 확고한 자기신념으로 갖고 나치가 승승장구할 때 자연스럽게 선전역할을 담당해 미친 듯이 설친 자들이다.

그런데 전쟁 전에 기회주의적으로 반 나치였다가 독일이 점령군이라는 강자로 등장하자 나치독일의 선전원으로 전락한 ‘매춘 언론인’은 매우 가혹하게 다루어졌다. 드골이 언론인을 제일 먼저 민족반역자의 숙청 재판의 도마 위에 올린 것도 숙청 전략의 일환이었다.

드골 자신이 언론인을 제일 먼저 심판하는 이유에 대해 나중에 솔직히 술회했다. 그는 회고록에서 “언론인은 도덕의 상징이기 때문에 첫 심판에 올려 가차없이 처단했다.”고 기록했다.

부역죄는 모든 숙청 재판에 반드시 병과되었는데, 부역죄는 선거권과 피선거권 및 공직 진출권이 박탈되며, 공무원, 군, 변호사,회계사, 교원, 노동조합원, 언론인과 모든 통신과 정보 업무에서 추방되고 심지어는 개인기업의 사장은 물론이고 이사진에서도 제외된다.특히 부역죄는 국적 박탈의 형벌이 자동적으로 병과된다고 규정해 드골이 나치 협력 반역자 숙청을 통해 프랑스 사회를 완전히 정화해 애국 시민만으로 재조직하려한 정치적 비전을 실현하려 한 것으로 주목되는 대목이다.

대숙청 후 프랑스 사회가 급속도로 민주화되고 도덕성과 윤리 및 민주적 법질서가 잡힌 것은 나치 협력 민족반역자들을 채로 모두 걸러내듯 부역자들까지도 응징한 것의 결과라는 평가이다.

드골은 파리 해방 직후 파리 숙청재판소에서 나치 협력 언론인을 제일 먼저 민족반역자의 심판대에 올림으로써 반역자 대숙청에 대한 비판 여론을 간단하게 잠재웠다.

프랑스 대숙청을 처음 학문적으로 연구한 로베르 아롱은 44~45년 나치협력 혐의로 의심받거나 처벌된 사람이 50만명, 구속된 사람이 15만명, 사망자는 3만~4만명이라고 추산했다. 그 가족들까지 감안하면 200만~300만명, 즉 총인구의 3~5%가 나치협력의 죄값으로 국가와 사회라는 공동체에서 추방당한 것이다.


- 출처: 주섭일, ‘프랑스의 대숙청’에서



콜롱베 성당 공동묘지에 잠들어 있는 드골. 흰 대리석의 드골 묘지는 너무나 평범하고 묘비에는 그의 유언대로 “샤를 드골, 1890-1970”이라고만 새겨져 있었다. 그러나 드골 대통령은 '프랑스의 자존심' 으로 추앙받으며 그의 묘지를 찾는 추모객은 매일 끊이지 않고 줄을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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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llu Speak

  1. Blog Icon
    아름다운꽃방

    아 저 사람이 한국에 태어났어야 해.

  2. 지도자 한사람이 그 나라의 국격을 만들어가는 일례라 생각됩니다..

  3. Blog Icon
    esp
  4. Blog Icon
    어여쁜 나

    샤를 드골 대통령 각하~! 당신이야말로 이시대의 참 대통령이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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